"AI가 청년 일자리를 다 빼앗는다"는 기사가 나왔다. 3년간 사라진 직업을 분석했다고 한다. 성우, 번역가, 주니어 개발자, 법무 보조 인력. 사례도 있고 수치도 있다. 그럴싸하다.
근데 잠깐. 한국 취업자 구조를 보자. 자영업자가 전체의 20% 이상이고, 제조업·건설·유통·음식점 종사자가 노동시장의 절반을 넘는다. 이 사람들이 AI한테 일자리를 빼앗겼나?
치킨집 사장이 AI한테 가게를 뺏겼나. 건설 현장 인부가 로봇한테 밀려났나. 편의점 알바가 ChatGPT 때문에 잘렸나.
기사가 하는 짓
성우 일감 80% 감소, 번역 단가 30% 하락, 주니어 개발자 채용 중단. 이건 사실이다.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근데 이 직군이 한국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냐. 전문직 프리랜서, 특수 기술직, 고학력 전문직 일부다. 전체 취업자 2800만 명 중 극히 일부인 직군 얘기를 가져다가 제목은 "청년 일자리 다 빼앗는다"로 뽑는다.
일반화의 오류다. 몇 가지 사례를 전체인 것처럼 포장하는 건 통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첫 문단에서 걸러낼 내용이다. 근데 대부분의 독자는 제목과 첫 사례만 읽는다. 언론이 그걸 안다.
진짜 원인은 기사 어디에도 없다
청년 고용률이 떨어진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코로나 이전부터 내수 침체, 기업 투자 감소, 대기업 공채 축소가 진행되고 있었다. 코로나가 그걸 표면으로 끌어올렸고, 이후 고금리·고물가 국면에서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맸다.
기업이 신규 채용을 안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기가 안 좋아서다. 매출이 안 나오고, 투자 여력이 없고, 불확실성이 크니까 안 뽑는 거다. 이건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있던 구조적 문제다.
AI가 일부 직군을 대체하는 건 맞다. 근데 "청년 일자리 부족 = AI 때문"이라는 등식은 틀렸다. 정확하게 쓰면 이렇다. "경기침체로 채용이 줄었고, AI가 특정 직군의 대체를 가속했다." 이 두 문장을 하나로 합쳐서 AI 단독 원인으로 만드는 게 이 기사의 구조다.
왜 이렇게 쓰냐
무서운 게 클릭이 된다. "경기침체로 채용 줄었다"는 제목은 조회수가 안 나온다. 이미 다들 아는 얘기고 새롭지 않으니까. 근데 "AI가 일자리 빼앗는다"는 AI라는 새로운 공포를 붙이면 클릭이 된다. 댓글이 달린다. 공유가 된다.
언론사 입장에서 이건 합리적인 선택이다. 문제는 그게 사실 보도가 아니라는 거다.
성우·번역가의 생계 위협은 진짜 심각한 문제고 제대로 다뤄야 할 이슈다. 근데 그걸 전체 청년 일자리 공포로 확대해서 포장하는 순간, 진짜 문제가 희석된다. 경기침체 대응 정책 논의가 사라지고, AI 규제 논쟁으로 프레임이 옮겨간다. 정작 자영업자가 왜 폐업하는지, 제조업 고용이 왜 줄어드는지는 기사 어디에도 없다.
틀린 진단에서 맞는 처방이 나올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