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사주 앱은 왜 다 보라색인가 — 도메인 없이 바이브 코딩하면 생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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뽐뿌 개발자 게시판에서 사주·타로 앱 개발 후기 글을 몇달 사이에 서너 개 봤다. 사용한 도구도 달랐다. 클로드 코드, 제미나이, 코덱스. 근데 스크린샷을 보다가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배경이 검으면 아이콘이 보라색. 배경이 보라색이면 텍스트가 흰색이나 금색. 핵심 기능은 일주, 월주, 사주 여덟 글자 분석. 용신 추출. 운세 해석.

도구가 달라도 결과물이 닮아있었다.


이건 개발자 잘못이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다

AI 코딩 도구에게 "사주 앱 만들어줘"라고 하면 AI는 학습 데이터에서 사주 관련 콘텐츠를 가져온다. 인터넷에 있는 사주 앱 레퍼런스, 블로그, 서비스들. 그걸 기반으로 UI 컬러 팔레트를 고르고, 기능 목록을 뽑고, 콘텐츠 구조를 짠다.

결과적으로 AI가 학습한 "평균적인 사주 서비스"가 나온다.

개발자가 세 명이어도 같은 학습 데이터를 쓴 AI에게 설계를 맡기면 수렴할 수밖에 없다. 보라색은 우연이 아니다. AI가 신비로움을 표현하는 데 쓰는 색이 학습 데이터 기준으로 보라색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콘텐츠다

UI가 비슷한 건 사실 괜찮다. 진짜 문제는 핵심 콘텐츠의 동질화다.

사주 서비스를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금방 안다. AI에게 "사주 분석해줘"라고 하면 십중팔구 이 구조가 나온다:

  • 일주(日柱) 분석 → 타고난 성격
  • 월주(月柱) 분석 → 부모운, 사회성
  • 용신(用神) 추출 → 도움이 되는 기운
  • 대운(大運) 흐름 → 10년 단위 운세

이게 틀린 건 아니다. 명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 커리큘럼이다. 근데 모든 서비스가 이 구조면 차별화가 없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어느 앱을 써도 같은 내용이다.


사주에서 진짜 중요한 건 뭔가

여기서 잠깐 명리학 얘기를 해야 한다.

같은 사주를 두고 왜 역술인마다 해석이 다를까? 팔자는 같고, 오행 계산도 같고, 용신 추출 공식도 같은데. 왜 어떤 선생은 "사업 운이 강하다"고 하고 다른 선생은 "직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할까?

사주는 데이터 처리가 아니라 해석 행위이기 때문이다.

같은 천간지지(天干地支) 조합을 보고 어떤 맥락에서 읽느냐, 어떤 관계와 흐름을 우선순위에 두느냐, 상담자의 현재 상황을 얼마나 반영하느냐 — 이게 역술가마다 다르다. 수십 년을 공부해도 관점이 수렴하지 않는 이유다.

즉, 사주 서비스의 가치는 분석 결과 자체가 아니라 해석의 관점이다.

AI에게 설계를 통째로 맡기면 이 "관점"이 빠진다. 관점이 없으니 교과서 커리큘럼만 남는다. 모든 서비스가 같아지는 구조적 이유다.


도메인 없이 AI에게 설계를 맡기면 생기는 일

이걸 개발 관점으로 바꿔 말하면 이렇다.

AI 코딩 도구는 구현은 잘한다. 시키는 걸 빠르게 만든다. 근데 "뭘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학습 데이터의 평균값이다. 도메인에 대한 주관이 없다.

사주 앱을 만드는 개발자가 명리학을 깊이 알 필요는 없다. 근데 최소한 이 질문에 자기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 서비스는 사주를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는가?"

이 답이 없으면 AI가 채워버린다. AI가 채운 답은 인터넷 평균이다. 결과물이 보라색이 되는 건 그 이후의 일이다.


차별화는 도메인 지식에서 나온다

내가 사주 서비스를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이거다. 어떤 오행 해석 체계를 쓸 것인가, 어떤 격국(格局) 분류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대운과 세운이 충돌할 때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건 AI에게 물어보면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합니다"라는 교과서 답이 나온다. 내가 직접 결정해야 하는 설계다.

이 결정들이 쌓이면 다른 서비스와 다른 콘텐츠가 나온다. 보라색 대신 다른 선택이 가능해지는 것도 이 시점이다.

바이브 코딩으로 빠르게 만드는 건 좋다. 근데 설계까지 AI에게 맡기면 결국 같은 서비스가 하나 더 생길 뿐이다.


요약: AI 코딩 도구가 만드는 사주 앱이 다 비슷한 건 도구 탓이 아니라, 도메인 설계를 AI에게 통째로 위임한 결과다. 차별화는 개발자가 도메인에 대한 관점을 가질 때 시작된다.

다음에는 내가 사주 해석 체계를 어떻게 설계했는지 — 어떤 격국 분류를 선택했고 왜 다른 방식을 버렸는지 — 실제 설계 결정 과정을 다뤄볼 생각이다.

 

 

https://www.sajuhub.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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